to me, you are perfect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의 모습은 늘 연장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길을 떠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직업이 목수라는 것을 알게 된 초등학교 시절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같은 차림으로 집을 나서서 짧으면 보름, 길면 반 년 동안 어디에 있다는 편지 한 장 없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식 농사가 부실했던 것은 아니어서 내 위로 누나가 둘 있었고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간 뒤에 내 아래로 여동생이 셋이나 더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전송하고 난 다음, 우물가의 커다란 향나무 곁에서 무엇인가를 망설이며 오래도록 서 있곤 했다. 그 뒷모습은 내가 학교에서 배운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에 나오는 선녀처럼 어여뻤고 서글퍼 보였다. 물론 선녀의 하늘옷은 우리집 낡은 장롱 속에 없었다. 하늘옷이 있더라도 끊임없이 태어나는 아이들 때문에 절대로 하늘로 올라갈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뭔가 불안했다. 내가 병든 닭 같은 눈으로 훔쳐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윽고 어머니는 향나무에서 손을 떼고 길게 한숨을 쉰 뒤에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 뒤면 어머니는 역전의 기회를 흘려보낸 노름꾼처럼 지쳐 보였다.

그 다음에 어머니는 부엌으로 가서 아버지가 집에 사들여온 쌀로 가마솥 가득 밥을 지었다. 김이 오르는 밥이 솥째 방에 들어오면 아버지가 있을 때는 슬그머니 사라졌던 짜디짠 장아찌와 간장, 고추장 같은 반찬이 다시 등장했다. 역시 아버지가 있을 때는 필요할 때만 펴지던 밥상이 자나깨나 웃목에 펴지게 마련이었다. 언제든 밥을 먹고 싶을 때 먹으라는 배려 때문만은 아니고, 일일이 밥을 해주기가 귀찮다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그런 눈치쯤은 있었다.

아버지가 떠나고 난 후 우리가 느끼는 해방감은 밥솥에 숟가락을 들고 덤벼드는 동작에서 나타났다. 밥솥을 가운데 두고 숟가락을 부딪쳐 가며 밥을 포식했다.

배를 어지간히 채우고 나서 어쩌다 어머니를 돌아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있을 때는 피우지 않던 담배를 피워물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천장을 향해 연기를 뿜는 고독한 그 모습에서 혹시 어머니가 우리를 몽땅 버리고 야반도주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아, 저 아름답고 젊은 어머니가 없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누나들과 함께 동생들을 업고 안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거지떼처럼 찾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실 때 밥을 먹고 난 다음 설거지는 으레 누나들이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두 누나 중 하나가 설거지를 하고 다른 누나는 동생들을 돌봤다. 배부른 아이들은 칭얼거리지도 않았고 울 만한 일이 있어도 한구석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곤 했다. 나는 불안과 무력감으로 꼼짝 못하고 어머니만 훔쳐보고 있었다. 누나가 설거지를 하고 난 뒤에 방안에 들어오면 어머니는 문득 잊었던 일이라도 되는 양 말했다.

“아 참, 저 위에 약방 할매한테 갔다와야겠다.”

그와 함께 우리의 불안은 연기처럼 날아가 버리고 방안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우리를 버리고 도망만 가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도 좋았고 어디로 가도 좋았다. 그게 또 그 전에 다녀오던 약방 할머니의 집이라면 좋고도 좋은 일이었다. 그런 기쁨을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나는 일부러 약방 할머니에 대해 물어보곤 했다.

“엄마. 약방 할매는 올해 몇 살이야?”

그러면 어머니는 눈을 조금 찡긋 하면서 “나이가 한정 없이 많지. 약방 할매가 여우였으면 벌써 꼬리가 아홉 개 생기고 처녀로 도섭을 했어도 여러 번 했을 게다” 하고는 우리가 따라오지 못하게 겁을 주었다. 나는 집안에 하나뿐인 사내로서 “여우가 뭐가 무서워, 진짜 무서운 건 원자폭탄이란 말이야” 하고 큰소리를 쳤지만 종내 약방 할머니에게 마실가는 어머니를 따라가지 못하고 말았다.

내가 어머니의 속을 썩일 때마다 내 잘못보다 훨씬 더 큰 절망에 사로잡히는 듯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의 입에서 `약방 할매에게 마실이라도 가야겠다'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내가 학교에서 유리창을 깨가며 친구와 싸워 나란히 코피가 터졌을 때, 그래서 친구의 어머니가 내 귀를 잡고 우리집에 와서 `애가 벌써부터 이렇게 주먹이 사나워서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네. 도대체 이 집에는 애 버릇 가르치는 남정네는 없나' 하고 악을 썼을 때, 그 날 어머니의 입에서는 종내 `약방 할매'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입술이 새파래지도록 깨문 채 힘껏 쥔 두 주먹을 공중에서 떨 뿐이었다. 내 종아리를 치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당신의 자식 누구에게도 매나 손을 대지 않았다. 용서를 받지 못하고, 어머니와 형제들이 자는 안방에서 쫓겨나 아버지가 오면 쓰는 곰팡내 나는 건넌방으로 쫓겨나 혼자 잠을 자면서 나는 `약방 할매'의 꿈을 꾸었다.

약방 할머니는 머리칼이 모두 새하얗고 얼굴은 소녀처럼 붉었다. 몸은 자그마하고 둥글었다. 말소리는 나직했으며 얼굴은 따뜻한 미소로 차 있었다. 약방 할머니는 어머니의 양손을 부여안고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하는 하소연을 듣고 있다가 등을 쓸어주며 `사는 게 다른 게요. 참고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오겠지' 하고 위로를 해주는 것이었다. 또 약방 할머니는 사방 벽을 따라 늘어선 서랍이 많은 약장에서 무슨 환약 같은 걸 꺼내 어머니에게 먹여주었다. 그러고 나니 어머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고 손뼉치며 노래까지 하는 것이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아버지는 더 이상 집 밖으로 돌지 않게 되었다. 그 때부터 어머니의 입에서 약방 할머니에게 마실을 가겠다는 말이 여간해서는 나오지 않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 대도시로 유학을 갔고 그때부터 일 년에 두세 달밖에 집에 머무르지 못했다. 재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를 가고 하면서 나는 약방 할머니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내가 약방 할머니의 이름을 들은 것은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없고 아버지 혼자서 방 안에서 화투장을 떼고 있었다. 어머니가 어디 갔느냐고 묻자 아버지는 “약방 할매라든가 뭐라든가 하는 늙은이한테 간다고 아까 나갔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때 아버지는 실직 상태였고 알콜중독에 빠져 있었으며 천장에서는 비가 새고 방바닥에서 연탄 가스가 올라오는데 고치지도 못하는 형편이었다.

제대를 하고 복학을 했고 졸업하고 직장을 잡았다.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아이가 말을 제법 하게 되었을 무렵, 갓 산 고물차를 끌고 열 몇 시간을 운전한 끝에 설 전날 오후에 고향 집으로 갔다. 인사를 하고 아이의 재롱을 보여주고, 새로 들어서는 동생과 매부들을 맞고 하다가 어느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그 때 나는 문득 약방 할머니가 아직 살아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머니는 손자를 무릎에서 내려놓고 막 담배 한 대를 피워무는 길이었다.

“엄마, 약방 할매가 아직 살아 계셔? 지금 연세가 백 살은 넘었겠네?”

어머니는 나를 힐끗 돌아보고는 눈을 다시 천장으로 돌리며 “약방 할매가 뉘고?” 하는 것이었다.

“나 어릴 때 엄마가 마실 가던 할머니 있잖아. 우리가 속 썩이면 저 위에 사는 약방 할매한테 간다고 그랬잖아요.”

나는 누이들한테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누이들은 둘러앉아 전을 부치고 떡을 썰며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는 천장을 펴다보며 가만히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큰누이가 아내에게 내 험담을 했다.

“현이 애비는 서른이 넘어도 아직 애지? 좋겠네. 어린 남편하고 살아서.”

아내가 대꾸했다.

“큰 애 하고 작은 애 하고 키우느라고 정신만 사납지요, 뭐.”

여인네들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집을 나와 우리집의 `저 위'에 해당하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십여 분을 뒤졌지만 약방은 커녕 약방을 할만한 곳도 보이지 않았다. 언덕을 오르내리느라 공연히 씩씩거리게 된 나는 산 바로 아래의 넓적한 바위를 발견하고 그 위에 앉았다. 바위는 아래로 약간 기울어져 있어서 자연스럽게 턱을 짚고 아래를 보게 만들었다. 그 곳에서는 아래 주택가로 흘러내리는 가난의 허연 구정물이며 뛰어노는 아이들, 시가지를 둘러싸며 어디론가 흘러가는 냇물, 둑에 듬성듬성 서 있는 소나무가 세세하게 내려다 보였다. 바람은 있는 듯 없는 듯 하고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들렸다 말았다 했다.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그제야 약방 할매가 누구인지 알 듯했다. 엉덩이 밑의 바위는 저물기 전의 길고 부드러운 햇빛을 받아 아직 따뜻했다.